상품의 디자인을 변경하는 것은 쉽습니다. 상품의 속성을 변경하는 것도 어렵지만 가능합니다. 상품의 정의를 확장하거나, 바꾸는 것은 그에 비하면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소비자가 그 정의를 동의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고요. 하지만 멋진 브랜드라면 그런 일을 해내지요.
뉴트로는 과거의 향수를 파는 걸까요? 향유하지 못한 세대에게 과거의 오리지널리티를 파는 걸까요? 우리가 ‘레전드’나 과거의 ’시류’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단지 추억이나, 또는 그 영광의 시간에 대한 결핍의 불안에만 기인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가장 끌리는 맛은 알고 있는 맛이라고도 하지요. 스포티파이UK는 단지 1979, 1983, 1998 이라는 숫자를 적은 것만으로도 수많은 음악팬들의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이참에 90’s 트랙이나 들으러 가봐야겠네요.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고민이 생깁니다. 오랜 역사와 자산은 강점이지만, 잘못 꺼내면 낡아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과거를 어떻게 보여줘야 지금도 새롭게 느껴질까요? Prada는 그 답을 브랜드가 시작된 장소에서 찾았어요. 1913년 첫 매장을 연 밀라노의 역사적인 장소에 패션부터 아카이브, 예술, 미식까지 아우르는 8개 층의 공간을 새롭게 선보였어요. 100년 넘게 쌓아온 자산을, 지금 경험할 수 있는 Prada로 바꾼 거죠. 헤리티지의 힘은 얼마나 오래됐는지가 아니라, 오래된 것을 얼마나 ‘오늘답게’ 보여주느냐에 있습니다.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지금의 문화와 취향으로 다시 연결하는 것. 오래된 브랜드가 계속 새로워지는 방식입니다.
요즘 브랜드 전략 만들기, 정말 쉬워졌죠. AI에게 몇 가지 질문만 던져도 꽤 그럴듯한 답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막상 받아놓고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근데, 이 방향이 정말 맞는 걸까? 잘 정리된 전략이 꼭 시장에서도 통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 브랜드다운지, 경쟁 브랜드와 충분히 다른지, 고객에게도 우리가 의도한 대로 받아들여질지 한 번쯤 확인해봐야 하죠. 이제는 새로운 전략을 만드는 것만큼, 지금 가진 전략이 정말 맞는지 검증하는 일이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이번 BRANDING NOW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브랜드 전략을 새로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이미 만든 전략을 어떻게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을지. ‘브랜드 검증’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합니다.
온라인에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시대, 굳이 매장까지 가야 할 이유는 뭘까요? 이제 브랜드의 경쟁력은 ‘무엇을 파느냐’보다 ‘얼마나 머물고 싶게 만드느냐’에 있어요. 영국의 백화점 셀프리지스(Selfridges)는 그 답을 ‘힐링’에서 찾았어요. 향기를 천천히 고르고, 뷰티와 웰니스를 경험하고, 라운지에서 쉬어가는 시간까지. 이제 이 백화점이 파는 것은 상품만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 그 자체죠. 그렇게 보낸 시간은 자연스럽게 브랜드와의 관계로 쌓여요. 오래 머물고, 경험하고, 다시 찾고, 머문 시간이 곧 관계의 깊이가 되는 것이죠. 이제 리테일은 물건을 사는 곳을 넘어, 기꺼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으로 바뀌고 있어요.
취향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좋아하는 음악이 옷차림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따라 새로운 스타일에 빠지기도 하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렇게 서로 연결됩니다. 패션 리세일 플랫폼 Depop과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Spotify도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났어요. 아티스트의 플레이리스트와 실제 옷장을 함께 공개하며, 음악을 듣는 경험을 패션으로 이어간 거죠. 좋은 콜라보는 꼭 닮은 브랜드끼리 만나야 하는 건 아닐 거예요. 중요한 건 그 만남이 사람들의 관심사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주느냐겠죠. 어쩌면 새로운 협업의 기회는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들의 취향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브랜드는 변화를 보여주고 싶을 때 새로운 것을 만들곤 해요. 새로운 캠페인, 새로운 메시지, 새로운 이름을 내놓죠. 하지만 꼭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브랜드가 달라지는 건 아니에요. 이미 잘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로 묶는 것도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어요. 아웃도어 브랜드 Arc’teryx가 선보인 ‘System 0’가 그렇습니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수선하고, 다시 활용해 온 여러 활동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었어요. ‘System 0’라는 이름에는 완전한 순환을 향해 가겠다는 목표도 담겨 있죠. 좋은 브랜딩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일만은 아니에요. 이미 브랜드 안에 흩어져 있는 좋은 생각과 행동을 발견하고, 하나의 의미로 연결하는 것도 브랜딩이죠. 새로운 것을 찾기 전에, 이미 가진 것부터 다시 들여다볼 이유입니다.
캠페인이 끝나면 브랜드는 조용해지죠. 신제품도, 프로모션도 없는 시간에는 고객에게 말을 걸 이유도 함께 사라지기 쉬워요. 하지만 어쩌면 브랜드와 고객의 진짜 관계는 그때부터 시작되는지도 몰라요. Ann Taylor는 최근 ‘This Is Ann’ 캠페인과 함께 조금 다른 방식의 컴백을 시작했어요. 뉴스레터 ‘The Desk’를 통해 스타일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고, 콘텐츠와 오프라인 경험, 앞으로의 커뮤니티까지 하나의 관계로 이어가고 있어요. 캠페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결국 끝이 있어요. 브랜드에 오래 남는 건 그다음에도 이어지는 ‘관계’이죠. 중요한 건 얼마나 크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이 계속 찾아올 이유를 만드는 일이에요.
브랜드는 꼭 브랜드의 목소리로 말해야 할까요? 요즘 브랜드들은 자신을 설명하는 대신, 자신을 대신해 이야기할 ‘존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로고보다 표정이 있고, 광고보다 이야기가 있는 ‘캐릭터’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예요. Crocs는 오랫동안 브랜드 안에 있던 악어를 꺼내 Niles라는 캐릭터로 탄생시켰어요. 성격과 관심사, 단점과 야망을 부여하고, 실제 직원들과 어울리는 시트콤형 콘텐츠까지 만들었죠. 25년 가까이 품어온 브랜드의 상징이 이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된 거예요. 브랜드 자산은 오래 가지고 있다고 저절로 커지지 않아요. 새로운 성격을 입히고, 이야기를 더하고, 사람들이 계속 만나고 싶게 만들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죠. 이제 브랜드가 고민해야 할 것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래 키울 수 있는 존재를 만드는 일인지도 몰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