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ING
브랜드 애즈 어 휴먼

브랜드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80-90년대의 브랜드의 의미는 판매자가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경쟁자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명칭, 용어, 디자인 혹은 그의 결합체에 가까웠습니다. (1988, Benett) 2020년 현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브랜드를 만들고 제품, 서비스를 소셜 커머스를 통해 판매할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나의 차별점이 누구든 카피하기 쉬워져버린 ‘브랜드 난감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과거에는 단순히 저렴해서, 혹은 있어 보여서 브랜드를 선택했다면, 이제는 ‘나와 취향이 같아서’, ‘가치관에 공감해서’라는 방향으로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가 성숙해가고 있습니다. 또한 브랜드가 마음에 든다면 그 브랜드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을 궁금해하고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동일한 의미를 갖습니다. 어떤 브랜드가 나에게 제공하는 1차적 가치, 즉 ‘포만감’, ‘상쾌함’ 등의 가치를 넘어 그 브랜드가 세상에 외치는 목소리가 나와 맞는지, 행동하는 바가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지를 보고 그 브랜드를 계속 사랑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매력적인 외모’와 ‘소용’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성격’과 ‘마음’, ‘의도’, ‘취향’을 갖게 된 브랜드. 갈수록 브랜드는 인간다워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갈수록 인간다워지는 브랜드의 세계에서 특히나 마음이 가는 브랜드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브랜드에 경의를 표하다 – "굿바이, 폭스바겐 비틀(Beetle)"

30대 초반, 자가용 차량 구입을 계획할 때 끝까지 후보에 올랐던 브랜드가 있었습니다. 바로 폭스바겐 비틀. 결국 실용성이 더 높은 다른 브랜드를 구입하긴 했지만 비틀을 택하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갔던 브랜드 비틀. 왜 그랬을까. 독특한 외관과 친근한 이름, ‘think small’이라는 작지만 큰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딱정벌레차라고 불리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비틀이 2019년을 기점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특정 차량의 생산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은 뉴스와 경제면에서 접하고 잊고 넘어갈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비틀과 일생을 함께 해온 고객들의 삶을 기리듯 비틀의 마지막 가는 길에 헌정 영상을 만들어 비틀의 가족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영상은 비틀로 아버지에게 운전을 배우고, 임신한 아내와 함께 길을 떠나고, 아이에게 차를 물려주는 저마다의 과정들을 덤덤하게 보여주며 마지막 딱정벌레처럼 날아가는 비틀에게 그동안 함께 해서 행복했다는 감정을 내어 줍니다. 그리고 말하죠. “Where one road ends, another begins.” 사람들이 브랜드에 감동하는 지점은 이렇듯 브랜드를 ‘생산 중단된 고물’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 그 브랜드와 함께 해온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 마지막 가는 길에 경의를 표하는 ‘인간적인 마음 씀씀이’에 있지 않을까요. 자문해 볼 일입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 혹은 브랜드는 그 브랜드와 관계하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팬덤이 소환해 낸 시간여행자 - 양준일이라는 브랜드

1991년에 데뷔해 짧은 기간 활동하고 갑자기 사라져버린 사람. 30년 앞서갔던 패션과 음악, 춤, 이방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30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팬들의 요청으로 인해 소환되어 ‘시간 여행자’로 불리는 한국판 슈가맨 양준일. 슈가맨에 출연한 후 양준일은 다시금 빠른 ‘양준일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삶의 터전을 미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옮기게 될만큼 두텁고 깊은 팬덤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왜 1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양준일에 열광할까요?

[온라인 탑골공원의 원조라 불리며 30년만에 소환된 시간여행자, 양준일]

20대 시절의 음악과 패션이 현 시대와 조응하는 ‘공시성’ 때문만이라면 그 인기는 신기루처럼 금방 꺼질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50대가 된 그의 매력은 이러한 공시성에 더해, 오랜 기간 힘든 마음의 시절을 이겨낸 그만의 맑음과 긍정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 그 팬덤이 넓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를 우리 곁에 데려다 준 것은 치밀한 재기의 노력이나 준비가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뉴트로 열풍도 한몫 했겠습니다만 그 원동력은 팬덤이었습니다. 20대 가수 시절 그는 잠시 활동을 쉬는 시기에 미국에 돌아가기 전 팬들에게 편지를 남겼고, 그것이 팬에 대한 ‘예의’였다고 말합니다. 팬과 함께 짜장면을 먹으며 2집 데모 테이프를 들었다는 일화는 그의 입이 아닌 팬들의 증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50대가 된 지금도 ‘팬바보’라고 불리는 양준일은 기획사가 철저히 ‘계획하고 관리하는 상품’이 아닌 팬과 직접 ‘호흡하고 관계하며 깊어지는 진짜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삶에 대한 태도에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양준일의 첫 책 2월 출시 예정]

기획했지만 기획되지 않은 브랜드 – 펭수

비틀 같은 상품도, 양준일 같은 사람도 아닌 요상한 매력의 브랜드도 있습니다. 바로 2019년이 낳은 최고의 발명품, 펭수입니다. 펭수는 EBS 연습생입니다. 모두가 압니다. EBS에는 연습생이 없다는 것을. 펭수는 남극에서 헤엄쳐 왔습니다. 모두가 알죠. 펭귄 모양의 봉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큰 탈을 쓴 사람이 연기를 한다는 것을. 하지만 펭수에 열광하는 팬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놀란 듯 큰 눈을 뜨고 있는 210미터 자이언트 펭수의 치명적 귀여움 외에도 그가 다양한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지들과 태도는 202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해소와 위로가 됩니다.

포스코에서 집지어주기 프로젝트로 콜라보레이션을 해도 결국 그는 다시 EBS 소품실로 돌아가야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펭수입니다. 펭수가 과연 정말 펭귄일까? 라는 의심에 펭수는 우문현답으로 답합니다. “펭수는 펭수다.”라고 말이죠. 펭수는 분명 기획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펭수의 세계관은 경직된 기획 안에 머무르지 않고 그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하는 팬들과 공명하며 더 두터운 팬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펭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캐릭터 브랜드가 가져야할 긍정적인 관계맺기의 표본이 아닐까요.

[교훈이 아닌 공감의 메시지로 공고한 팬덤을 갖춘 브랜드 펭수]

브랜드를 어떻게 차별화할까만을 고민한다면 브랜드의 앞길이 안개처럼 뿌옇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 고민 이면에 어떻게 그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깊이 호흡하고 관계 맺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첫번째 할 일이 아닐까요. 

 

Think Brand as a human. Think human as a brand.

브랜드의 마지막 길에 경의를 표하고,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시대와 소통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제시하는 브랜드들을 응원합니다.   

김 혜 원
Brand Strategy Director
hyewon@stonebc.com

당신의 감각을 깨우고 비즈니스에 영감을 줄 내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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