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ING
브랜드가 ‘책’을 펼치는 이유

숏폼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시대에, 브랜드들이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틱톡 알고리즘이 초 단위로 시선을 흩트리고, 인스타그램 피드가 3초 만에 스크롤되는 세상이죠. 그런데 바로 그 세상에서 럭셔리 브랜드들은 시집을 쌓아 설치 미술을 만들고, 소설을 들고 캠페인을 기획합니다.

이 움직임은 단순한 형식의 변화가 아닙니다. 브랜드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죠. 왜 하필 지금, 책인가. 그리고 그것이 브랜드에게 무엇을 주는가.

브랜드가 문학이 되는 시대

브랜딩 바이더 북(Branding by the Book)은 단지책을 소재로 한 마케팅이 아닙니다. 브랜드가 도서 문화 전체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삼아, 소비자와 감성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이죠. 서점과 독서 공간을 만들고, 북클럽을 운영하고, 작가와 협업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브랜드의문화적 정체성을 쌓아가는 벽돌이 됩니다.

티파니(Tiffany & Co.)는 문학 작품의 인용구를 광고 캠페인에 담아, 브랜드의 스토리와 헤리티지를 전달해왔습니다. 이들에게 책은 제품 카탈로그가 아니라 브랜드 철학의 확장입니다.

[티파니 사랑에 대한 인용구 광고 캠페인] ©Tiffany & Co.

서사를 품은 럭셔리, 패션과 문학의 융합

‘문학과 패션의 융합은 최근 몇 년 사이 패션계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스타일을 제안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브랜드의 감정과 가치를 문장처럼 풀어내는서사적 매체로 진화하고 있죠.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문학적 카피를 광고 비주얼에 결합해, 패션 이미지를 하나의읽히는 장면으로 확장해왔습니다. 2024 ‘As Time Goes By’ 캠페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출발해, 사랑과 기억이라는 감정을 시네마적 장면으로 풀어냈죠. 제품을 설명하기보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브랜드를 하나의 이야기로 남깁니다.

[입생로랑 2024년 'As Time Goes By' 광고 캠페인] ©Yves Saint Laurent

디올(Dior)의 ‘Book Tote’ 컬렉션은 더 직접적입니다. ‘드라큘라’와 ‘위험한 관계’ 초판 표지를 모티브로 삼은 이 가방은, 단순히 책을 담는 용도가 아니라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미학적 선언이죠. 책을 읽는 사람의 삶을 사랑한다는 브랜드의 태도가, 제품 자체에 새겨진 것입니다.

[디올 'Book Tote' 컬렉션] ©Dior

미우미우(Miu Miu)는 아예 문화적 담론을 직접 이끕니다. ‘Literary Club’을 운영하며, 2025 ‘A Woman’s Education’에서는 여성의 성장과 사랑을 주제로 문학적 대화를 펼쳤죠. 패션 브랜드가 독서 모임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옷을 파는 게 아니라, 지적인 삶의 방식을 공유한다는 것. 오디언스를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같은 취향을 가진 독자로 정의하는 방식이죠.

[미우미우 2025년 'Miu Miu Literary Club 2025: A Woman's Education'] ©Miu Miu

이들의 공통점은 옷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읽히고 느껴지는 것’으로 설계한다는 점입니다.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소비되지만, 문학은 해석을 요구하죠. 그리고 그 해석의 과정이 브랜드와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듭니다.

시가 브랜드 로고보다 오래 남을 때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의 사례는 특히 인상적입니다. 2025년 상하이, 보테가 베네타는 ‘A Poetic Conversation’이라는 프로젝트를 선보였습니다. 중국 시인 유수화의 시집을 수천 권 쌓아 브랜드 로고를 만들고, 방문객이 책을 한 권씩 가져갈수록 로고가 서서히 사라지는 설치 미술이었죠. 마침내 모든 책이 사라지면, 그 자리엔 로고가 아닌 시만 남습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보테가 베네타의 시적 체험 공간 'A Poetic Conversation'] ©BOTTEGA VENETA

이 캠페인은 브랜드 로고보다 문학이 더 오래 남는다는, 역설적이지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소비자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화려한 광고가 아니라 시 한 편일 수 있다는 것. 브랜드가 진정성을 획득하는 방법은 자신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한 발 물러서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죠.

브랜드가 소비자를 서사의 참여자로 만드는 방식. 이것이 북 컬처 브랜딩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짧은 시대에 긴 이야기를 꺼내는 용기

숏폼 콘텐츠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코치(Coach)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Explore Your Story’ 캠페인은 개인이 가진 고유한 서사가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끄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죠. 단편적인 이미지 나열이 아니라, 인물과 감정, 시간이 축적된 서사 구조를 통해 말합니다. 더 특별한 것은, 이 캠페인이 Z세대 커뮤니티와의 공동 창작으로 완성됐다는 점입니다.

[코치 'Explore Your Story' 캠페인] ©COACH

책이 도구가 될 때

북 컬처 브랜딩은 럭셔리 패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독일의 생리용품 기업 The Female Company는 생리용품에 붙는 19%의 세금이 부당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탐폰북(The Tampon Book)’을 기획했습니다. 책에는 7%의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는 점을 역이용해, 탐폰을 책 안에 넣어 판매한 것이죠. 문학이 아닌, 책이라는형식자체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매체가 된 사례입니다.

[The Tampon Book(탐폰북)] ©The Female Company

책이라는 매체는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시간을 전제로 하죠. 읽는 행위는 곧 머무르는 행위이고, 머무름은 관계로 이어집니다. 브랜드가 책을 만든다는 것은우리는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한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책'인가

왜 지금 이 시대에,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향해, 브랜드들은 책과 문학을 꺼내 드는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첫째는 신뢰의 위기입니다. 광고와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브랜드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책과 문학은 그 진정성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어떤 광고보다 깊은 신뢰를 만들어냅니다.

둘째는 느린 소비에 대한 열망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 사람들은 역설적으로오래 남는 것을 갈망합니다. 책은 본질적으로 느린 매체이고, 그 메시지는 스크롤에 밀려 사라지지 않죠.

셋째는 커뮤니티의 힘입니다. 독서는 혼자 하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강력한 공동체를 만들어냅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 사이엔 공유된 언어와 경험이 생기니까요. 미우미우의 Literary Club이 단순한 독서 모임이 아닌 브랜드 커뮤니티가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넷째는 AI 시대에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AI는 순식간에 카피와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브랜드가 살아온 고유한 서사만큼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브랜드의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책장을 덮으며 — 브랜드가 써야 할 다음 문장

브랜딩 바이더 북(Branding by the Book)은 트렌드가 아닙니다. 책과 문학을 브랜딩에 도입하는 것은 결국브랜드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는 일이니까요.

짧은 콘텐츠는 시선을 붙잡지만, 긴 이야기는 마음을 붙잡습니다. 브랜드가 선택한 이 느린 방식은 결코 비효율적인 선택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본질적인 방식이죠.

당신의 브랜드는 어떤 책을 쓰고 있나요? 그리고 그 책을 읽고 싶은 독자는 누구인가요?

책을 펼치는 브랜드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믿는 브랜드입니다.

당신의 감각을 깨우고 비즈니스에 영감을 줄 내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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