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을 하는 이유
기업의 마케팅 의뢰가 들어올 때는 두 가지 배경을 뒤로 할 때가 많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시장 확대를 통한 기업의 성장입니다. 새로운 상품을 내어 시장에서 경쟁자들 대비 우위에 서기 위한 목적이죠. 둘째는 위기입니다. 경쟁력이 약화되어 기존과 같은 성장을 유지하기 어려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함입니다. 시장이 변화하거나 경쟁자들 대비 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질 때, 새로운 활로를 뚫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주요 목적입니다.
두 가지 모두 시장과 경쟁자라는 요소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지난 날에는 주류였으나 변화에 뒤쳐지며 새로운 주류들과 상대해야 할 때, 또는 새로운 주류로 다시 태어나야 할 때 기업은 마케팅에 돈을 씁니다. 가만 둬도 잘 팔리는 물건을 더 잘 팔자고 마케팅에 가열차게 투자하는 경우는 특별한 전략 상황이 아닌 이상 드물죠.
그런 이유로, 기업은 결국 이미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는 경쟁자의 상품을 마케팅 전략에 투영하려는 욕심이 앞섭니다. 그게 도약이든 위기든 자신이 믿고 있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먹히고’ 있는 상품 만한 답안지가 없어 보이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시장과 경쟁자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느냐 입니다.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 중 하나는 “지금 경쟁사들은 이렇게 한다. 그들은 이런 전략을 가지고 있다.” 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구두약을 파는 A라는 회사는 구두에 광을 내야 하는 사람들(시장)에게 구두약을 파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십년을 구두약을 팔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경쟁 구두약 제조사인 B사가 나타나서 모던한 패키지의 구두약을 시장에 내고는 이상하게도 구두 수선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기존의 구두 수선 서비스 보다도 더 저렴합니다. B사는 구두약은 진열만 해둘 뿐 광고도 홍보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B사의 구두약이 잘 팔립니다. A사는 B사와 마찬가지로 구두약 패키징을 모던하고 심플하게 변형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BI도 바꿨습니다. 캐치프레이즈도 더 세련되게 바뀌었습니다. 한편, C라는 구두 수선 서비스 체인 회사 역시 B사가 구두 수선 서비스로 고객을 확보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가격 경쟁에 나섰습니다. B사 보다 아주 미세하게 낮은 비용으로 가격을 낮췄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A사와 C사는 점점 시장 점유율에서 B사에 잠식 당합니다. A사는 구두약 성분을 개선도 시켜보고, C사는 서비스하는 사람들을 다시 교육해봅니다만 두 회사 모두 왜 B사에게 시장점유율을 뺏기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A라는 구두약 제조사와 C라는 구두 수선 서비스 회사는 무엇을 잘못 했을까요? 먼저, A사와 C사는 서로가 같은 경쟁 시장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B사가 ‘시장’을 재편했기 때문이죠. A사는 B사를 구두약 제조사로 생각했으면 안 되었고, C사는 B사를 구두 수선 서비스 회사로 생각해서는 안 됐던 것이죠. 그나저나 과연 B사는 제조사일까요? 서비스 회사일까요?
아마존은 뭘 하는 회사일까?
아마존을 온라인 서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더이상 없겠죠? 아마존은 아시다시피 처음에 책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언제까지 ‘출판 유통 판매’ 시장의 강자였을까요? 단지 다양한 상품을 파는 형태로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가 되었을까요?
아마존은 클라우드 사업자이고, 광고 플랫폼이고, IT 회사이고, 패션 회사이고, 식품 회사이면서, 영화사이고 유통사이면서 제조사입니다. 섬유 회사가 설탕 회사로, 그리고 전자 제품과 반도체 회사가 되는 과거 몇 십년 전의 업의 이동과 확대에 비하면 가늠할 수 조차 없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제조사가 유통도 하게 되는 그런 전통적인 패러다임 시프트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전에는 쉽게 상상할 수도 없던 이종교배의 시장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IBM과 HP는 아마존이 처음 책을 팔 때 아마존이 자신들의 가장 큰 라이벌이 될 것을 알았을까요? 구글은 광고 플랫폼으로 아마존의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사들은 언제 아마존에 인수될까 하루하루가 풍전등화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국가의 GDP에 영향을 끼치는 기업들이 기업의 상품과 시장을 10년 전의 정의에 메여서 같은 시장에서 어떻게 계속 환골탈태 할까를 고민하며 저를 찾아올 때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그들의 말도 맞습니다. 잘 할 수 있는 걸 잘 해야 하고, 잘 팔 수 있는 걸 잘 팔아야겠지요. 다만 시장은 소비자와 경쟁자와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 소비자도, 그 경쟁자들도 본인들이 생각하던 시대의 대상들이 아니라면 그 시장의 수요의 정체도 모른 채 공급을 하려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아도 내가 팔던 상품의 시장은 변합니다. 더불어 달라진 시장의 다른 경쟁자도 등장합니다. 당연히 기존의 경쟁사 대응과는 달라져야 합니다. 그린란드에서 바이킹과 싸우고 있었는데 어느새 정신 차려 보니 고비사막에서 몽골족과 싸우고 있는 것이죠. 무기도 달라야 하고 배가 아니라 말을 타야 하고 언어도 다르고 온도도 다릅니다.
그래서 구두약을 잘 팔아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회사가 아니라, 슈즈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싶고 그로 인해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회사를 만나면 제가 별 일을 하지 않아도 이 회사의 비즈니스가 성공하리라 예감하게 됩니다.
시간을 쟁취하는 일
시장과 경쟁자를 쉽게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로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자신이 만들었거나 만들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사용할 대상 즉 오디언스에 집중해야 합니다.
모두가 고객을 생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피하기 어려운 숙명은 제품이 세상에 나와야 하는 당위에 매몰되는 것입니다. 제품이 세상에 나와야 하는 건 당연하게도 고객과 수요가 있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전제가 성립되고 나면 제품의 시장 논리와 그 시장의 경쟁자와 소비자를 병풍으로 두고 제품 출시의 당위를 견고하게 다져갑니다. 저를 찾아올 때 쯤엔 콘크리트처럼 강력한 논리를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들에게 그 논리는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논리를 전제로 지금 상품 출시를 눈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감각과 운을 떼어놓고 사업 승패를 논할 순 없지만 대부분은 그 회사가 가진 능력에 비해 편협한 상품 비전을 가지고 올 때가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소비자는 보이지 않고 제품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대상에 대해 철저히 규명했다면, 제품을 사용할 그 대상의 시간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올해 1월에 주주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HBO 보다 더 강력한 경쟁자로 지목한 것은 포트나이트였습니다. 포트나이트는 게임입니다. 1억 3천 만명의 유저를 보유한 넷플릭스에 비해 포트나이트는 2억 명 이상의 액티브 유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무언가에 시청 시간을 뺏긴다면 그건 바로 포트나이트 게임 시간이었던 것이죠. HBO에서 뺏어와야 할 시청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전통 인쇄 매체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변화를 꾀하려는 어느 미디어 회사가 스톤에 들고 온 경쟁 시장과 경쟁사들은 앞서 디지털 시장으로 편입한 인쇄 매체들과 기존의 전자 출판 강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통해 이 매체가 콘텐츠를 통해 소구하려는 대상과 내용, 그리고 소비 시간은 그대로 특정 시간의 유튜브 시청자들로 메여 있었습니다. 유튜브의 콘텐츠에 대항해 해당 오디언스에게 이 전자 활자와 이미지로 된 콘텐츠가 어떻게 나은지를 설득해야 했지요. 즉, 이들의 경쟁사는 전자 출판사들이 아니었습니다(유튜브였습니다!). 단지 형태가 그러했기 때문에 응당 전자출판 시장에서 해당 플레이어들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무언가를 팔려면 그 제품의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대게, 그것은 즐겁거나 소비자의 위상을 바꾸거나 문제를 해결합니다. 당신의 제품 대신 무언가가(제품이라고 한정 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의 타겟 오디언스를 즐겁게 하거나 그들의 위상을 바꾸거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습니까? 만약 무언가가 그 일을 해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당신의 타겟 오디언스의 시간을 일정 이상 점유해야 가능합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게 바로 지금 당신의 경쟁자입니다.
마케팅을 통해 회사를 망치는 방법
마케팅 일을 해오면서 솔직히 이렇게는 절대 그 난국을 극복할 수 없는 결과물을 클라이언트에게 줄 때도 있습니다. 제 역량이 모자랄 때도 있지만 기어이 그런 결과물을 받길 바라는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때이기도 합니다.
요즘 그러한 상황에 많이 직면합니다. 콘텐츠 마케팅에 대해서 거대한 동의를 하면서도 결국에는 국내 성공 사례나 같은 업종과 시장에서의 성공 레퍼런스를 요구합니다. 안타깝게도 국내 콘텐츠 마케팅의 성공 사례는 커녕 도입 사례 조차 거의 없습니다. 이미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바꿔 시장의 정의를 바꾼 회사들이 있다면 과연 그런 시장에 따라 들어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되묻곤 합니다. SNS 채널을 개설하고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지만 ATL에만 집중하겠다고 했던 기업들은 이후 모든 기업이 온라인 플레이로 전환하고 SNS 광고 플랫폼들의 가격이 치솟을 때로 치솟았을 때야 다들 하니까 온라인 전략을 구사해달라고 합니다. 초반의 진입 때 보다 효과를 획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서야 2배나 높아진 광고 비용을 들여 온라인 전략을 도입하는 회사를 차고 넘치게 목격했습니다.
시장은 한계가 없습니다. 기존에 비즈니스가 성립되던 시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장이 새로 열리고 있고 또 정의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경쟁자도 그만큼 생기고 있고요.
물론 결정권자들을 설득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도박을 하고 싶은 임원은 없겠지요. 결국 마케팅 결정권자들과 실무자들이 살아남을 수는 있되, 브랜드와 상품은 모두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일들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케케묵은 시장과 변해버린 상황에 지금까지 해 오던 그대로 돌진하는 일이야말로 더 없이 끔찍한 도박으로 보입니다.
더 기민하게 방향 설정을 하는 기업과 사람들이 더욱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경쟁 대상 자체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기존 시장이 아니라 신흥 시장을 찾습니다. 또는 시장 자체를 변형합니다.
어제의 경쟁자는 오늘의 경쟁자가 아니다
그런 변화되고 가늠할 수 없는 시장 상황일수록 기업과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 핵심 가치는 계속해서 검토해야 합니다. 그것이 쉽게 바뀌기 때문이 아니라 바뀔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핵심 가치가 눈 앞에서 자꾸 흐려진다면 그것은 바뀌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쉽게 이유를 잊는 존재입니다. 방법에만 몰두하는 것이 간단하지요. 당위에 매몰되는 일들은 대게 핵심 가치로부터 멀어질 때 벌어지기 쉬운 일입니다.
‘어떤 구두약이든 판매할 수만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라면, 그 목적과 방법은 모두 시장을 따라서만, 그리고 시장에 의해서만 움직이게 됩니다. 따라가게 되면서 누가 내 경쟁자였는지,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조차 상실하게 됩니다. 만약 당신의 브랜드가, 그리고 상품이 단단한 핵심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시장과 수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는 사람(오디언스이자 소비자)을 따라갈 수 있겠지요. 미디어를 향유하는 소비자의 변화 속도를 비추어 본다면, 지금 시장의 수요가 보여주는 가능성이라는 것은 신기루에 가까울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가보면 우물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이 상대하고 있는 경쟁자는 이미 다른 대상입니다. 혹 당신이 상대하고 싶은 대상 역시 이미 탈 카테고리화된 경쟁자입니다. 그리고 그 경쟁자는 당신의 카테고리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그 방법으로 성공한 것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미안하지만.
어디에서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모른다면 제갈공명이 책사여도 이길 방법은 없습니다.
김해경
CMO
hara@stone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