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의류, 편집숍이 아닌 브랜드들도 “우리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합니다” 라고 말하는 케이스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광고 문구 역시 “당신이 필요한 것을 줄게요” 라고 말하기보다는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솔루션을 제안합니다” 라고 말한다. 도대체 라이프스타일이 뭐길래 모두들 라이프스타일, 라이프스타일 노래를 부르는걸까.
라이프스타일이란 본래 개인이나 집단의 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사회학 용어이나, 2차세계대전 이후 대량생산에 따른 소비문화의 출현과 함께 마케팅과 광고 과정에서 제품 판매/촉진의 중요한 단서로 자리매김해 왔다. 최근에 생긴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과거의 라이프스타일이 ‘제품 이미지 = 소비자’라는 공식으로 소비를 촉진시키는 수단에 그쳤다면, 2018년의 라이프스타일은 생활양식 뿐 아니라 인생관, 생활 태도를 포함한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 TV에 나와 광고하면 순식간에 제품이 팔려 나가던 시대의 향수에서 깨어나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을 뽑을 때만 가치관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선택하는 여러 순간에도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생필품과 사치품의 시대를 건너 ‘가치품’의 시대로
과거 70-80년대가 꼭 필요한 것을 취하는 ‘생필품의 시대’였고, 그 뒤를 이어 90-00년대가 갖고 싶은 것을 욕망하는 ‘사치품의 시대’였다면, 소득과 생활수준이 높아진 지금은 ‘가치품의 시대’다. 가지고 다니면 모두가 부러워하던 명품은 이제 더이상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개성과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남이 아닌 ‘오롯이 나에게 가치있는 스토리가 있는 가치품’이 새로운 시대의 럭셔리로 해석되고 있다. 가치품이 꼭 취향에 따른 유형적 물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시간이,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간 및 경험이 가치품일 수 있다. 즉, ‘개개인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시간, 공간, 경험, 물건, 맥락의 총체’가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이다.
가치품의 시대를 관통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
라이프스타일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란 또 뭐란 말인가. 귀납법으로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말하는 브랜드들은 어떤 브랜드일까.
“MUJI is more than simply a line of products. It is a way of thinking.”
“Ace Hotel is a collection of individuals. We accept the hotel as a potential for real, fluid community.”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했을 때 크게 이견이 없는 위의 두 브랜드, 무지와 에이스호텔을 생각해보자. 물론 두 브랜드 모두 ‘먹고, 자고, 생활하는’ 분야라는 공통점은 있다. 중요한 것은 두 브랜드 모두 자신들의 업을 독특한 관점에서 ‘새롭게 정의’했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됐다’ 라는 다소 허무한 듯 들리는 무지의 철학은 간결한 삶과 미의식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에이스호텔은 화려하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호텔이 아닌 지역의 누구나 편하게 와서 일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쿨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호텔을 재해석했다.
경쟁, 카테고리의 한계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무한의 세계
가치품의 시대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승리를 거머쥘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적인 브랜드들이 정형화된 시장 내에서 경쟁에 열을 올린다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철학에 조응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면밀히 살펴 그들의 취향과 가치관을 중심으로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수납상자를 판매하던 무지가 호텔을 만들고, 에이스호텔이 음반을 만드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그런 일들이 경쟁 내에서의 확장이 아닌 그 브랜드의 오디언스를 중심으로 한 확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특정 가치를 중심으로 카테고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이용권을 손에 쥔 브랜드’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대표할 수 있는 또 다른 말은 ‘혁신’이다.
미닝아웃 시대를 살아가는 마케터의 자세
커밍아웃을 넘어 미닝아웃(Meaning Out)의 시대라고들 한다. 사회, 정치적 신념과 같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소비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저렴한 가격, 단순한 필요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소비를 확장해가는 지금 시대를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변모, 또는 혁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한들,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샐러드를 팔던 회사가 갑자기 호텔이라도 지어야 한다는 말일까? 중요한 것은 어떤 품목, 분야로 확장할 것이냐가 아니다. 우리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브랜드인가”를 알아차려야 한다. 홈페이지와 브로셔에 브랜드 가치를 멋진 형용사로 꾸미라는 것이 아님을 이쯤에선 모두 이해했을 것이라 믿어본다. 경쟁 브랜드보다 뭘 더 잘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 브랜드를 가치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또다른 ‘확장된 가치’를 전달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마블(MARVEL STUDIO)이 마블러스(놀라운)한 것은 개별 캐릭터의 스토리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닌, 캐릭터 간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마블 유니버스(MARVEL UNIVERSE), 즉 마블의 세계관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우리 브랜드는 세계관을 갖췄는가? 그 세계관에 빠져 허우적거릴 오디언스가 존재하는가? 이러한 고민 없이 여전히 4P Mix, 포지셔닝맵, SWOT 분석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할 때이다.
당신 브랜드의 타겟은 누구인가요?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더이상 ‘20대 후반 젊은 직장인 여성’ 이라고 답하지 않길 바란다. 세대 구분에서 공감 지향의 시대로 이행하는 지금 우리 브랜드가 대변하고자 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뚜렷하다면 그 브랜드의 오디언스는 10대부터 70대까지 확장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식 속에서 경쟁 브랜드를 지우고, 우리 브랜드에서 허우적거리는 날을 꿈꾸며.
김혜원
Brand Creation Group Strategy Director
heywon@stonebc.com